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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모] 담금질 10년 세월, 이필모 One Fin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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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S엔터테인먼트 작성일15-01-29 09:27 조회4,2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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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에서 배우를 꿈꾸던 남자는 서른하고도 몇 해가 지나 처음 TV 단막극에 출연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단역부터 조연, 주연의 자리를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거쳤다. 무던히 걸어온 10년의 세월. 이필모가 배우로서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담금질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나무보다 숲을 보는 배우
시인 나태주는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했다. 이필모(40)도 그랬다. 볼수록 궁금하고 알수록 깊이 있는 배우. 숨겨진 그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았다.

“어제 드라마 종방연이 있었어요. 4개월간 정들었던 역할을 떠나보내려면 시원섭섭하니까, 그 핑계로 꽤 늦게까지 술자리를 지키다 왔어요.”

최근 막을 내린 SBS-TV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그는 보도국 사회부 기자들을 지휘하는 ‘시경 캡’ 황교동을 연기했다. 겉으로는 쌀쌀맞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후배들을 아끼는 선배이자 언론인으로서 진실 추구의 사명을 다하는 인물이다.

“작품 안에서 여러 갈등이 휘몰아치지만 교동은 휩쓸리지 않고 본인의 신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행동해요. 일에 파묻혀 사느라 수염도 못 깎고 머리도 덥수룩하지만 내면은 단단하고 카리스마로 무장한, 같은 남자가 봐도 멋진 캐릭터였어요.”

대본을 받고 촬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그는 사회부 아이템 회의부터 취재, 편집 등 뉴스를 만드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 실제 시경 캡을 따로 만나 말투, 걸음걸이, 입는 것, 먹는 것, 무심코 풍기는 느낌까지도 놓치지 않고 담으려 노력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니시리즈의 남녀 주인공이 극을 예쁘게 포장하는 역할을 한다면 반대로 저 같은 사람들은 최대한 사실성을 높여줘야 해요. 그래야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이 맞으면서 이야기가 재미있어지죠. 배우는 항상 머릿속에 작품이라는 숲을 품고 영민하게 자신을 굽힐 줄도, 세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무보다 숲을 본다는 그의 연기관은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아로새긴 것이다. 막연히 연기를 하고 싶다는 꿈 하나로 연극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오르며 꽤 긴 시간을 무명 배우로 살았다.

“배우는 선택받는 존재잖아요. 졸업은 했는데 찾아주는 사람은 없고.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랄까. 친구들과 작은 극단을 만들어서 공연도 했는데 그래봤자 교통비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연기 강사, 레스토랑 지배인, 공사장 일용직, 이삿짐센터 직원까지. 참, 고시원 총무도 해봤는데 그게 꽤 쏠쏠했어요. 월급도 주고 고시원 방도 하나 내주거든요(웃음).”

그래도 젊어서 한 고생이 연기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언제 어떻게 드러날지는 모르겠지만 배우의 감정은 경험한 만큼 깊어진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래서 아픈 청춘이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극히 보통의 싱글 라이프
데뷔 후 여러 작품을 거쳤지만 그의 이름을 우리 머릿속에 또렷하게 새긴 드라마는 2009년 시청률 45%를 넘긴 ‘솔약국집 아들들’이다. 심하게 잘난 척하고, 여자 좋아하는 둘째 아들 대풍으로 큰 사랑을 받은 이필모는 이후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빛과 그림자’, ‘응급남녀’ 등을 거치며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한다. 지난 1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TV 주말드라마 ‘내 마음 반짝반짝’에서는 악연으로 얽힌 여주인공 순정(장신영 분)을 얼떨결에 돕다 사랑에 빠지는 장순철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배우로서의 인생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막내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결혼 독촉’ 수위는 높아지는 중이다.

“며칠 전에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이 결혼도 안 하고 저렇게 늙는구나’라면서 한숨을 푹 쉬시는 거예요. 제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니까요!(웃음) 요즘 자꾸 어머니께서 결혼 얘기를 하시는 걸 보니 때가 되긴 했구나 싶어요. 물론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상형은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밝고 귀여운 여자. 어렸을 때는 외모가 화려한 사람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여자 보는 눈이 바뀌었다. 신중한 성격이라 괜찮은 상대가 있으면 오랫동안 찬찬히 지켜보는 편이다.

“제가 좀 칙칙하잖아요(웃음). 옆에 있는 사람까지 조용하고 차가우면 안 어울릴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여자분이면 좋겠어요. 게다가 대화까지 잘 통한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지난해 그는 내 집 장만의 꿈을 이뤘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 방배동에 있는 아파트로 독립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살림 솜씨가 궁금했지만, 본가가 5분 거리라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대부분 도맡아 해주신다고. 집에 올 때마다 “이제 여자만 데려오면 된다!”라는 귀여운 잔소리도 덧붙이신다.

 


“살림은 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시지만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자주 해 먹어요. 근데 제가 하면 잡탕이 되더라고요(웃음). 달걀말이 하나를 만들 때도 버섯, 햄, 양파 등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 다 넣어야 직성이 풀려요. 만들다 부족한 것 같으면 더 넣고. 음식의 정체성이 사라지긴 하지만 맛은 있어요. 하하!”

혼자 있는 게 쓸쓸할 때면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낸다. 유치원 때부터 쭉 이곳 방배동에 살았던 토박이라 아직도 근처에 친구들이 많다. 커피 머신에서 막 내린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고상하게 책을 읽는 ‘차가운 도시 남자’ 같은 싱글 라이프를 기대했다는 말을 건네니, “주말엔 당구 치고 노는데요?”라며 남아 있던 환상을 가볍게 격파하는 그. 알고 보니 주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소주 애호가였다.

“학교 다닐 때 동기 중 술을 제일 잘 마셨어요. 양주는 싫고 대폿집에서 파는 소주나 막걸리가 좋아요. 친구는 깊고 좁게 사귀는 편이라 술 마시는 멤버가 정해져 있어요.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첫째 형으로 나온 손현주씨와는 아주 오래된 술친구죠(웃음).”

배우를 반대했던 어머니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그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먹먹하고 애틋하다. 넉넉지 못했던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소시지 한 번 싸간 적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사고 싶은 것은 꾹꾹 눌러 참아야 했던 때. 그래도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보여준 순도 100%의 희생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몇 백원 아끼려고 몇 정거장 거리는 걸어 다닐 정도로 알뜰한 분이세요. 초등학교 때는 상장 받는 날에만 쭈쭈바를 사주셨던 기억도 나요(웃음). 워낙 여유가 없었으니까….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장난은 많이 쳤지만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은 없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희생과 사랑을 배신하면 안 되잖아요.”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 태도. 그가 가진 값진 자산이다. 서른이 넘어 데뷔했을 당시에도 그랬다. 늦었지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걸로 만족했다. 욕심 없고 무심한 성격 덕에 없으면 없는 대로, 모자라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어머니께서 빵을 좋아하세요. 집 가는 길에 빵을 한아름 안고 갈 때,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웃음). 쉬는 날 아버지랑 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는 것도 행복하고. 화려하고 비싼 레스토랑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조촐한 식탁이 훨씬 좋아요.”

처음부터 배우의 길을 반대했던 어머니.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도 기대만큼 배우라는 직업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험한 세상에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갖길 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잘 알지만, 가끔 섭섭할 때도 있다.

“배우는 불확실한 직업이잖아요. 퇴직금도 없고, 성공할지도 모르고. 어머니께서 힘들게 사셨으니까 남들처럼 공부해서 ‘미생’으로 살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배우 생활을 한 지 10년쯤 됐으면 뿌듯하게 생각하실 만도 한데. 결혼 전에는 칭찬 듣기 힘들 것 같아요(웃음).”

그는 해가 갈수록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쌓여서 연기에 묻어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10년의 연기 내공에, 세월을 얹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그가 자신의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어요. 할아버지가 돼도 역할이 크든 작든 계속 일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슈퍼마켓 아저씨나 치킨집 사장님이 돼 동네를 지키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웃음), 몸과 정신이 허락할 때까지는 배우로 살아야죠.”

앞으로는 액션이나 누아르에 도전하고 싶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아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오우삼 감독의 영화는 놓친 것 없이 챙겨볼 정도로 팬이라고. 의사나 기자와 같은 전문직 역할을 벗어나고 싶다는 그의 속내도 들었다.

 

“10년 동안 한결같이 지적인 캐릭터만 맡았어요. 배우로서는 조금 아쉽죠. 앞으로는 건달, 심부름꾼 같은 개성 강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이필모가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뱉은 말은 ‘배우’였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과 자부심이 응축된 단어다. 배우의 존재감은 만드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글 서미정 기자

사진 박재찬

의상 협찬 애드호크(02-543-5231), 플랙진(02-514-0695), CHOI(070-4024-1974), HYDROGEN·MANUEL RITZ(02-542-3271), MARK RONSEN(02-514-8070), ZARA(02-3413-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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